조선 후기와 대한제국 시기는 내외적 위기가 겹쳐 국가의 존망이 흔들리던 시대였다. 두 시기는 시간적으로 이어져 있지만, 위기를 대하는 방식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조선은 내부 제도적 한계와 보수적 구조 속에서 점진적 대응을 시도했으며, 대한제국은 국가 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했지만 국제정세의 압박을 온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본 글에서는 정책, 군사, 외교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두 시기의 위기 대응 방식과 그 성패를 비교 분석하며 오늘날 국가적 위기관리의 교훈을 살펴본다.

정책 – 조선의 점진적 개혁 vs 대한제국의 급진적 근대화
조선 후기의 정책 대응은 내부적 모순을 완화하려는 점진적 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대표적으로 영조와 정조는 탕평정치를 통해 당파 싸움을 줄이고, 균역법과 규장각 개혁을 통해 제도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는 사회적 혼란을 완화하고 국력을 회복하려는 정책이었지만, 구조적인 변화를 이루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산업 구조, 행정 체계, 재정 기반 등 국가 근본 시스템은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대한제국은 근대국가를 목표로 한 급진적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광무개혁은 토지조사, 화폐·회계 정비, 근대적 관료제 구축 등 ‘국가 시스템 자체를 재정비하는 과정’이었다. 황제권 강화와 더불어 근대 행정체계를 마련하며 조선을 근대국가로 전환시키려 했다. 특히 신교육 제도 도입, 근대적 산업 육성, 상공업 장려 정책은 매우 선진적인 시도였다. 하지만 대한제국 정책의 문제는 ‘시간의 부족’이었다. 조선은 점진적 개혁이었기에 100년을 이어갈 시간이 있었지만, 대한제국은 근대화의 필수 과정을 10~20년 안에 모두 해내야 했다. 급진적 변화는 내부 저항을 키웠고, 외세의 간섭 속에 정책을 완성하지 못했다. 결국 정책 측면에서 조선은 내부 안정 중심의 완만한 변화, 대한제국은 국가 생존을 위한 과감한 체제 개혁이라는 차이를 보여준다.
군사 – 조선의 전통군 유지 vs 대한제국의 근대군 창설
조선 후기 군사체제는 임진왜란 이후 삼남 지방에 진관 체제로 군을 배치하고 훈련도감 등 중앙군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군사제도는 점차 형식화되고 부패가 깊어졌다. 군역제의 문란, 군수 시스템 미흡, 무기 낙후 등은 외세의 침입 앞에서 큰 약점이 되었다. 조선 후기의 군사 개혁은 소극적이었으며, 서양 열강의 군사기술이 유입될 때도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대한제국은 이러한 군사적 후진성을 뒤늦게나마 인식하고 근대적 군대 창설을 적극 추진했다. 별기군 창설, 신식 군사훈련 도입, 일본·청나라·러시아 군사 교관을 통한 교육, 근대식 무기 도입 등은 군사 혁신의 중요한 시도였다. 대한제국군은 이전의 조선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대적 구조에 가까워졌으며, 장교 학교 설립과 군사 행정 정비는 미래 군대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대한제국 군사 개혁의 가장 큰 문제는 외세의 간섭이었다. 갑신정변 이후 일본은 조선군의 약화를 노렸고, 청나라는 조선을 보호국처럼 간섭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군사권을 박탈하며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켰다. 내부 개혁이 완성되기도 전에 외부의 무력적 개입으로 군사 개혁은 중단되고 말았다. 결국 군사 측면에서 조선은 전통 체제를 유지하는 안정성 중심, 대한제국은 국가 생존을 위해 근대화에 도전했지만 외세 압력으로 좌절된 변화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외교 – 조선의 균형외교 vs 대한제국의 다자외교
조선 후기는 국제 정세가 크게 변동하던 시기였고, 조선은 전통적인 사대교린 외교를 기반으로 중국 중심 질서를 유지하며 주변국과 관계를 관리했다. 청나라와의 사대 관계는 안정적 외교 질서를 제공했지만, 서양 열강이 등장하면서 이 구조는 한계를 드러냈다. 조선의 외교 방식은 새로운 국제 규칙을 이해하지 못한 채 기존 방식만을 고수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반면 대한제국은 기존 외교 체제의 붕괴 속에서 전혀 새로운 다자외교 전략을 시도했다. 여러 조약을 통해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과 협력하려 했으며, 일본의 침략을 견제하기 위해 강대국 간 세력 균형을 활용하려 했다. 이는 조선의 외교가 ‘한 나라를 중심으로 한 단일 축 외교’였다면, 대한제국은 ‘다국적 협력과 국제법을 활용하는 다자외교’였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외교적 한계는 국제정세를 정확히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국가 역량이 없었다는 점이다. 한반도는 러시아·일본·청나라가 경쟁하는 지정학적 중심이었고, 대한제국은 이들 강대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주도권을 잡기 어려웠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동북아 패권을 확보하자 대한제국의 외교는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결국 외교 측면에서 조선은 안정적이지만 변화에 둔감했던 외교, 대한제국은 근대 국제 질서에 적응하려 했으나 강대국의 힘에 밀려 실패한 외교로 대비된다.
결론
조선과 대한제국은 모두 위기의 시대를 살았지만, 대응 방식은 전혀 달랐다. 조선은 기존 질서를 유지하면서 점진적 개혁을 시도했으며, 대한제국은 국가 생존을 위해 대대적 개혁과 외교 혁신을 추진했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변화의 속도와 국제적 압박 속에서 개혁을 완성하지 못했다. 이 비교는 국가 위기관리에서 ‘내부 체제의 정비’와 ‘국제정세의 정확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